덕후가 쓰는 글
환승 비행기 놓치고 짐 분실했던 경험 본문
2017년 런던 여행기도 마무리 안 해놓고 다짜고짜 이 끔찍한 우여곡절부터 쓰는 이유는 이런 후기가 그 당시 너무 간절함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1년 내도록 '비행기 놓침-짐 분실-짐 되찾음' 얘기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바쁘게 인생 살다보니 벌써 2019년 런던여행도 1년 지났고 이 상태론 영영 후기 안 쓸 거 같아서 일단 글쓰기 창부터 열었다.
지금 공항에서, 혹은 숙소에서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에겐 말많은 내 글을 다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알기에 가장 먼저 요약/결론만 써놓고 구구절절한 사연은 뒤에서 혼자 떠들도록 하겠다.
항공사: LOT 에어라인
비행기 놓친 이유: 본인 착오 (ㅅㅂ) 연착 아님. 노쇼 처리
비행일정: 인천-바르샤바-런던 / 런던-바르샤바-인천: 굵게 처리한 저 구간의 비행기를 놓침
짐 찾는데 걸린 시간: 약 2박 3일
우리가 해야 할 일: 환승 게이트 내의 항공사로 찾아가서 비행기 놓친 사실을 알림-직원이 탈 수 있는 항공편 알아봐줌-없으면 본인이 새로 티켓 사야 함-조금 여유가 있는 비행기 표를 삼-환승게이트에서 나가서 컨베이어를 떠도는 내 짐을 수거함-그 뒤 새 비행일정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출국장에서 다시 도착지로 가는 수속을 밟음(짐도 다시 붙이란 소리)-다시 출국장으로 돌아와 새로 구매한 티켓의 비행기를 기다림 ㅠ
그러나 내가 한 일:
저 굵은 글씨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고생을 무지하게 했다. 사실 원래 비행 일정 자체가 1시간 50분인가 그래서 나는 애초에 비행기 연착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비행기는 제 시간에 잘 도착했고 나도 환승게이트를 막힘없이 찾아냈다. 그래서 아마 한 40분은 여유가 있었을 거다. (정확한 기억은 아님...1년 전 이야기... 앞으로의 숫자나 알파벳 따위는 그냥 임의로 막 떠올려서 쓰는 것)
런던행 비행기 게이트는 17번이었고 17/18번 게이트 입구로 들어섰다. 빠르게 훑어보니 오른쪽 구석에 빈 자리가 많았기에 잠깐이라도 가서 쉬려고 그리로 향했다. 좀 있으니 사람들이 슬슬 보딩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예전 같았음 누구보다도 먼저 서있으려고 했겠지만 이제 비행기 타는 것도 한 10번은 되었으니 일찍 줄 서봤자 별것도 없다는 거 아니까 그냥 최대한 자리에 뭉개고 있었다. 줄이 좀 줄어드는 막판에 서서 들어가려고 기다리는데 지연인 건지 뭔지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서 나는 그냥 그러려니 계속 자리에 앉아있다가 나중에 줄이 드디어 당겨질 때에 서서 표 검사를 받는데----
개고생이 시작됐다. 승무원이 이 줄이 아니라고 하는 것. 그러더니 옆 줄의 승무원을 막 불러와서는 잠깐 물어보더니 이 비행기는 벌써 끝났다고 한다. ?!?!? 나 계속 여기 있었는데? 줄 서는 거 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게이트 구조가 이렇게 돼있었던 통에, 내가 보고 있던 사람들의 줄 뒤편으로 다른 줄이 더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서 있어야 할 17번 게이트 줄이었고! 사람들이 빽빽히 서 있으니 내 시야는 일단 차단 되어있고, 눈 앞에 보이는 거라곤 소란 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차례차례 게이트로 들어가는 사람들이었으니 나는 모든 게 잘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ㅠ 그제야 초점 놓고 바라봤던 게이트 위 모니터에 노랗게 LAST CALL 이라고 떴던 게 떠올랐고 그게 날 부르는 거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멘붕은 멘붕인 거고, 일단 상황부터 수습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에 항공사 카운터부터 찾아갔다. 난 바빠 죽겠는데 직원들 뭔 할 일이 바쁜 건지 한참을 떠들다가 나한테 뭐 도와줄까 물어보길래 초조함을 누르고 나 지금 비행기 놓쳤는데 어떡하냐고 했더니 자기들이 한참 찾았는데 어딨었냐고 그럼 ㅠ 몰라 한국말로 정확히 내 이름 불렀어야지 '초이' 어쩌고 했을 거면서 짜식들아... 하지만 거기서 가장 큰 실수를 한 사람은 나고, 또 제일 간절한 사람도 나였기 때문에 나는 별 소리 못 하고 그 사람들이 안내 해주는 것에 따라야 했다. 직원은 여기저기 콜을 돌려보면서 혹시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있는지 알아보면서, '만약에 자리가 없으면 표를 새로 사야 한다+너의 남은 비행일정은 모두 취소되고 환불도 되지 않는다+연착으로 놓친 게 아니라 '노 쇼'로 탑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더 충격적인 내용을 안내해주었다. 눈물 좔좔... 여행을 시작도 못 해보고 망하는 느낌이라 너무 슬펐지만 타지에서 혼자 울 수 없어 씨발하는 마음으로 인내하고 기쁜 소식을 기대해보았으나 결국 빈 자리가 없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직원은 새로운 표를 살 것을 추천했고, 여기서 바로 끊어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비싸니까 따로 인터넷으로 사는 게 나을 거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행히 4시간 정도 후인 저녁에 런던행 비행기 표가 있었다. 그래도 환승국이 유럽 내였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결제 끝내고 다시 항공사를 찾아가 새로운 표를 받긴 했으나, 이젠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 표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 부모님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고 다행히 아직도 이 나이에 막내둥이 취급받는 딸램이어서 타박 반 우쭈쭈 반 받으면서 계좌 보내주고 들어온 돈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표도 구했다. 그땐 부모님한테 진짜 잘해야지 했었는데 크흡... 그렇게 어찌되었든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생각하고 힘없이 공항에 갇혀서 나의 새 비행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개고생은 끝나지 않았지. 히드로에 도착해서 짐을 찾으려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내 짐이 안 나온다.
차라리 비행기 놓친 건 돈과 시간이 존나 아깝다 뿐이지 어쨌든 해결은 가능한 문제니까 상관이 없는데 짐가방 없이 덜렁 도착하다니? 안내센터 갔더니 다른 컨베이어로 가보래서 갔는데 여전히 없어. 그제야 급하게 다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환승 비행기를 놓쳤을 경우에는 짐이 연결이 되지 않아서 도로 공항으로 토해져 나온다는 거다!
여기서 너무 화가 났던 게 내가 안 그래도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느낌이 싸해서 항공사 직원한테 내 짐은? 물어봤더니 걔가 "It will be waiting"이라고 했단 말임.... 난 그게 히드로 공항에 가면 있을 거란 얘기로 알았는데!!! 근데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어떡하겠어. 히드로에서 한숨 팍팍 쉬면서 분실리포트 작성하고 나면 여기서 업데이트 상황을 알 수 있다며 사이트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종이를 한 장 준다. 말로는 곧 도착한다, 내일 도착한다, 어쩐다 하는데 내 경험 기반+그동안 사람들이 올린 글 보면 최소 2일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일단 그때 시간이 벌써 밤 10시는 되었으므로... 내일 올 거라는 얘기 들으면서도 안 믿었음.
그렇게 숙소 뒤늦게 도착해서 물로만 씻고ㅠ 슈퍼에서 산 맛대가리 없는 샌드위치로 첫끼 떼우고 ㅅㅂ...ㅠ 다음날 여행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에 있는 몰에서 세면용품이랑 위아래 옷 한 벌씩 사서 그걸로 여행을 시작했다. 어쨌든 짐을 찾아서 보내준다니까 마음대로 필요한 것들 사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이렇게 살고는 있는데 짐이 안 오면 어쩌나 싶어서 돌아다니면서도 틈날 때마다 그 사이트 들락거리는데

저 망할 트래킹 컨티뉴즈 문구가 바뀌질 않았다. 조금도. 내가 짐을 찾아 돌아왔을 때까지도! 저거라도 바로바로 반영이 됐으면 내가 좀 덜 초조했을텐데. 내 짐이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건지도 확신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어. 인터넷엔 짐을 며칠째 못 받았다는 글만 잔뜩인데! 이게 내가 이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다. 하나라도 더 '짐을 되찾은 후기'를 기록해놓자. 이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위안이 된다는 걸 몸소 느꼈기 때문에 흑흑...
어쨌든 초조함에 미쳐버릴 것 같았던 나는 구글을 존나 뒤져서 LOT항공의 분실물 담당, 히드로의 분실물 담당 등 내가 찾을 수 있는 곳 모두에 구구절절 읍소문 메일을 보냈다*. 이제 와 다시 메일 읽어보니 혼자 너무너무 불안해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그게 너무 짜증났다. 직원들은 너무 태연하게 '분명히 도착해~ 곧 도착해~' 이러고 있는데 사이트엔 아무 변화가 없고 난 짐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가 없으니..
* 답장이 왔던 메일 주소
위쪽이 그나마 빠르게 답변이 왔으나 기계적이었고 아래쪽은 내 짐이 어떤 비행기로 오는지에 대한 상세정보를 알려줬고 소통도 됐다.
그렇게 꾸역꾸역 관광을 하다가 언제였지..이제 시간순서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ㅠㅠ 여행 둘쨋날인가 아마 메일이 먼저 도착했을 것이다. 메일로 오늘 오후에 무슨 비행기로 짐 부쳐준대서 알겠다고 하긴 했는데 사이트는 여전히 업데이트가 안 된 상태고("니 짐 찾고 있는중~") 그 때가 주말이어서 이 영국놈들이 짐이 온다고 해서 바로 배달해줄 것 같지가 않은 거임. 그래서 메일로 "알겠어 근데 왜 사이트엔 아무 변화가 없음?" 물어보니 "어쩌고저쩌고 사이트에선 그 짐 확실히 머시기 비행기로 들어간다고 나옴"이라는 답장이 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숙소 도착했는데 여전히 짐 도착한 건 없고... 쉬발 유럽놈들 답답해뒤져 못 믿겠어 싶어서 숙소 직원한테 가서 전화 한 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거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서 문단 띄우기... 내가 어느 정도 영어로 소통은 가능하지만 절대 완벽한 수준이 아니라 (애초에 그러니까 짐도 잃어버렸지) 무작정 전화 걸었다간 무시만 당하고 기분 더러워질 거 같아서 숙소 직원한테 내 상황 설명하고 대신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숙소 직원은 내 손짓을 볼 수 있고 내가 말을 조금 느리게 해도 천천히 듣고 기다려 줄 시간이 있으니까 ㅠㅠ 다행히 숙소 직원 너무너무 친절해서 차근차근 듣고 본인이 직접 전화 걸어서 나름 따져줄 건 따져주고 하더라 흑흑... 중간중간 들으면서 만약 짐 도착하면 내가 공항으로 찾으러 가겠다 연락 달라고 말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전화 끊고나니까 직원도 이따가 연락 준다네 너무 걱정하지마 럽~ 해서 ㅠㅠ알게써(말로만) 하고 방에 가서 기다림
그리고 잠깐 한눈 판 사이에(ㄹㅇ10초) 전화가 왔다가 끊기고 (ㅅㅂ!) 어이가 없어서 이 망할 유럽영국새끼들아 아아아아!!!! 하면서 무의미하게 사이트 확인해보니까 또 여전히 '니 짐 찾는중~'인 상태. 그렇게 밤새 잠 뒤척이고 정신 나갈 거 같아서 아예 새벽부터 공항으로 직접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새벽 5시부터 다시 히드로로 돌아갔다. 아직 분실물 센터는 문 열리기도 전이었고... 시간 되자마자 일빠로 들어갔는데 어이없게도 거기는 공항 내에서 잃어버린 물건 찾는 곳이고 나는 다른 데로 가보라고 안내를 받았다. 그거 찾는 것도 한참 걸렸음 ㅠ 정확히 부서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암튼 2층에 어디 구석에 가라고 해서 구석 갔는데도 안 보이고 ?? 하다가 더 자세히 뒤져보니까 직원들 출입문 입고 옆에 전화 있는 곳이 있었음. 거기에서 전화를 걸고 나 짐 잃어버렸고 도착했다고 해서 찾으러 왔다고 얘기를 하면 직원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잠시 뒤(40분 ㅅㅂ)에 직원이 설렁설렁 직원용 보안출입문을 지나 나를 데리러 온다. 그렇게 뒷길로 직원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이틀 전 하염없이 내 짐을 기다렸던 그 장소가 나온다. 헉 진짜 짐 찾을 수 있겠단 생각과 함께 좀 더 따라가면 나같은 불쌍한 중생들의 잃어버린 짐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나도 드디어 짐을 찾을 수 있었음 ㅠㅠㅠㅠㅠ

그리고 나갈 땐 그냥 보통 관광객들처럼 입국장으로 나가면 된다... 그때 돼서야 정말 여행 하는 기분 새롭게 들고 숨통이 트였다 후... 그리고 그 미친 사이트는 내가 짐을 찾아서 며칠 째 신나게 놀고 돌아다녔는데도 여전히 '니 짐 찾는중~' 상태였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그 사이트만 바로바로 업데이트가 반영됐어도 이렇게 숨 막히진 않았을텐데! 짐 돌아오겠거니 하고 안심하고 기다렸을텐데! 그게 너무 속상했다. 뭐 그래도 어쨌든 나는 짐을 되찾았고 남은 여행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힘내서 잘 돌아다녔다. 여행에서의 방심과 여유는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은 셈이지 뭐..
환승게이트를 잘 확인하여 비행기를 놓치지 마세요
혹시라도 놓쳤다면 본인의 짐을 꼭 되찾아 다시 붙이세요ㅠ
특히 노쇼로 놓친 거라면 안전상의 이유로 그 승객의 짐은 빼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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